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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두 번에 걸쳐 조선에 조총이 소개되었다. 그 러나 조선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임진왜란이 어려운 싸움이 되었 다. 일본에 조총이 전래된 지 12년 되던 1555년, 일본인 평장친(平長親) 은 당시 조선의 임금이던 명종에게 조총을 조정에 바치고 제작기술을 전수하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조총 만드는 데 쓸 철이 없다는 이유로 명종이 반대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안 쓰고 뒹구는 종을 녹여서 쓰 자는 일부 신하들의 건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재욱 저(著) 《고난이 꽃이 되고 별이 되게 하소서》 (규장, 16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포르투갈을 거쳐 조총이 일본에 들어간 16세기 중반, 조선도 이미 조 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과의 외교사절이나 통신사 활동을 통해 조총의 위력을 확인한 적도 있었고, 이를 구입하거나 제조할 기 회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여년 동안 평화의 시기를 맞아온 조선 조정은 이를 경홀히 여겼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에는 대마도주인 소 요시토시가 통신사를 일본에 보낼 것을 청하면서 최신식 조총을 예물로 조선 조정에 바쳤지만,아무런 관심 없이 창고에 처박아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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