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배와 망명이야말로 고통 속에 피어난 영혼의 꽃이다. 이는 세계사
상사를 풍요롭게 가꾼 동력이었으니,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사도
요한으로부터 도스토예프스키, 아인슈타인, 라흐마니노프까지, 동양에선
손자, 한비자, 사마천, 달마 등이 그 본보기다. 더구나 우리에겐 송강,
고산, 다산, 추사로 이어진 유배문학의 빛나는 전통이 있다.”
이경교 저(著) 《청춘서간》 (행복우물, 99-100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물러나야 했던 자리, 떠날 수밖에 없던 땅. 유배와 망명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밀려난 자리가
오히려 깊은 통찰의 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남긴 것은 궁형의 치욕 속에서였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시베리아 유배 이후에야 꽃을 피웠습니다. 정약용 또한 유
배지 강진에서 오히려 학문의 줄기를 뻗어 실학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쫓겨난 자리에 핀 꽃이, 환영받은 자리의 꽃보다 더 향기롭습니다.
유배지에서의 글 한 줄이, 궁궐에서 쓴 백 장의 문서보다 오래 남습니다.
바울 사도의 옥중 서신들 역시 감옥이라는 한계 속에서 탄생한, 영적
자유의 선언문입니다. 육체는 감옥에 묶였으나, 말씀은 결코 갇히지 않
았습니다.

성령은 그의 마음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
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외쳤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그래서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기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갇힌 바울은,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진정한 감옥은 벽이 아니라, 죄와 욕망에 사
로잡힌 마음입니다. 바울은 갇힌 자의 몸으로, 죄에 갇힌 세상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감옥에서 쓴 복음이, 오늘도 우리의 마음의 감옥을 부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딤후2:9)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