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비빔밥은 ‘아빠’와 동의어입니다. 다정이 병일 만큼 자상했던
아빠. 다섯 자식들이 제비 새끼처럼 두레상에 조르르 앉으면, 아빠가
물었습니다. “비빔밥 먹을 사람?”
“나.”, “나.”. “나.”, “나.”, “나.”
오중창이 이어졌고 아빠는 아이들의 그릇마다 따로따로 정성껏 밥을 비
볐습니다. 큰 그릇에 다 넣고 한 번에 비빌 만도 한데, 생긴 것만큼이나
다른, 저마다의 비빔 취향에 따라 고추장 많이, 간장으로, 김치 넣고,
참기름 많이, 호박나물 빼고… .
주문에 맞춰서 각자의 밥그릇에 부벅부벅 밥을 비벼주었습니다.
“아빠, 나, 비빔밥!”
이 소리에 수저를 내려놓고 밥을 비벼줬던 아빠. 더없이 다정한 비빔
밥을 맛보는 복을 누린 그 시간이 새삼 고맙습니다.
정진아 편저(編著) 《맛있는 시》 (나무생각, 25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하얀 쌀밥 위에 모여든 빨강, 초록, 노랑, 주황 각자 다른 빛깔, 다른
맛이지만 서로 어울려 한 그릇에 녹아듭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을 때
마다 재료들은 더 깊이 섞이고 각자의 맛을 나누어 가집니다. 다른 듯
어우러지는 각기 다른 맛들이 하나로 섞이며 더 깊은 맛이 납니다.
비빔밥은 갖가지 재료와 양념이 서로 어우러져 저마다 고유한 맛을 지
니면서도, 조화롭게 비벼져서 새로운 맛을 내는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섞임의 미학, 화합과 융합의 미학입니다. 자기를 잃지 않되 잘 어울릴
줄 아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미학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먹었던 스토리가 있는 음식입니다.

드라마 〈대장금〉에는 장금이가 왕에게 산딸기를 바치는 장면이 나옵
니다. 장금이는 이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라 하였습니다. 왕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산딸기는 편찮으신 어머니께 드린 마지막 음식입니다. 제 어미를 걱
정하던 마음으로 전하께 올렸습니다.”
산딸기에 스며 있는 스토리를 말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산딸기에 담긴
따뜻하면서 애닲은 사연이 그 맛을 최고의 맛으로 만듭니다.
사랑이 깃든 음식이 제일 맛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깊이 사랑하여 동행한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가장 행
복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4)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