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설혹 한 천사가 있어 나를 가슴에 껴안는다 해도, 그 강한 존재로 말미암아 나는 스러지고 말리라.” 이 세 줄은 릴케의 시 「두이노의 비가」를 끌고 나아가는 기관차 같은 구절입니다. 강한 천사와 연약한 인간. 인간은 짐승은 아니지만, 그렇 다고 천사도 될 수 없다는 것 — 그것이 릴케가 응시한 비애의 핵심입니 다. 영원을 생각하면서도 유한 속에 갇혀 있는 존재, 무한을 그리워하 면서도 필멸을 피할 수 없는 존재. 땅에도, 천사의 하늘에도 온전히 속 하지 못한 채, 그 경계에서 ‘울부짖는 존재’그것이 릴케가 본 인간의 초상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중간한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천사가 우리의 울부짖음을 불쌍히 여겨 품에 안아준다 해도, 문제는 우 리가 그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먹인 보약이 약이 되지 못하고 독이 되듯이, 천사의 사랑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사랑의 종류가 아닙니다. 류(類)가 다른 존재 사 이에서, 이해는 가능할지 몰라도 온전한 공감은 불가능합니다. 천사가 껴안을수록 인간은 으스러질 뿐입니다. 영원을 갈망하면서도 그 영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하와이 사람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알로하aloha!’라고 인사한 다. ‘나는 지금 신의 눈앞에 있습니다’라는 의미이다. 나와 당신,그 리고 저 꽃과 바닷가 조약돌조차도 신이 창조한 신성한 존재라는 것이다.” 배연국 저(著) 《소확행》 (글로세움, 21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의심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속에 흔적을 남기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잎이 물들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새싹이 돋아납니다. 계절은 늘 제 자리를 지키고, 자연은 경이로운 조화를 이룹니다. 이 질서 안에, 이 아름다움 안에, 하나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신의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어찌 믿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신이 있다면 기적을 통해 증명해 보라고 다그친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의 말은 이것이다. ‘나는 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본 어떤 것도 신 아닌 것이 없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신의 증거물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온다. 갈바람에 억새가 은빛 춤을 추고 길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하 중 통역을 보는 통사(通事)에 요시라(要時羅) 라는 자가 있었다. 요시라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진영에 드나들며 강 화문제를 논의하는 등 고니시 측의 대조선 연락망 역할을 하던 자이다. 이 요시라의 반간계(反間計, 거짓정보나 소문을 흘려 적을 현혹시키는 계략)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 하옥 당하고 사형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종각 저(著) 《일본인과 이순신》 (이상, 214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항왜자들 중에 요시라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완전히 조선으로 투항한 것은 아니고, 고니시 휘하에 속해 있으면서도 당시 항왜자들을 총 관리 하던 좌의정 김응남과 많은 정보를 주고받은 자였습니다. 요시라는 조 선에게 유리한 정보를 홀려 자기를 믿게 만들었던, 이중간첩이었습니다. 요시라는 김응서에게 가토 기요마사가 특정 날짜에 도해할 것이니 이를 잡으라는 정보를 흘렸는데, 이는 조선 수군을 사지로 몰아넣거나 혹은 왕명을 거부하게 만들어 이순신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덫이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요시라의 말을 믿어버렸습니다. 임금 선조는 이순신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마도를 건너오는 가토 기요마사를 요격하라.”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입니다. 아무리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수께끼를 풀기 어 려워도,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추리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지막에 탐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을 때 ‘오 과연,그런 것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다 읽은 나’를 상정하기 때문입니다(중략).‘읽고 있는 나’와 ‘다 읽은 나’는 모래밭 양쪽 에서 굴을 파는 두 아이와 같습니다. 계속 파 들어가는 사이에 점점 맞 은편에서 굴을 파는 상대방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 으로 얇은 모래벽이 무너지면 손과 손이 만나고 바람이 훅 통합니다. ‘아아,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내가 다 읽은 것을 기다린 나’와 다시 한번 만나는 것입니다.” 우치다 다쓰루 저(著) 김경원 역(譯)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원더박스, 64,6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이라고 합니다. 두껍고 어려운 책이지만,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은, 책을
“한 백인 인류학자가 어느 날 밤 칼라하리 사막에서 부시맨들과 이야 기를 나누던 중 자신은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시맨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 했다(중략). 키 작은 부시맨이 그 인류학자를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으로 데려가 밤하늘 아래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런 다음 한 사람이 속삭이며 물었다. 이제는 별들의 노랫소리가 들리 느냐고. 그는(중략)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부시맨들은 그를 마치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모닥불가로 데려간 뒤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참으로 안된 일이라고, 참으로 유감이라고. 인류학자는 오히려 자신이 더 유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듣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시인이며 소설가인 데이비드 웨이고너의 시 「별들의 침묵」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칼라하리의 밤하늘 아래서 별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인류학자의 모습은, 소음과 속도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듣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소리, 곧 자연의 숨결과 이웃의 미 묘한 마음, 그리고 자신의 양심의 속삭임은 점점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중세 말의 유럽에서 주문(呪文)으로 겨울을 길게 했다는 자백을 받아 내어 118명의 여인들을 불 속에 던져 넣음으로 시작된 마녀사냥의 발단도 6월까지 계속된 혹독한 추위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지배 계층들과 지식인들까지 비이성적인 광기로 몰아간 것은 바로 ‘오지 않는 봄’ 이었던 것이다.” 최대봉 저(著) 《낭만시절》(작가, 1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류는 소빙하기(Little Ice Age)를 겪었습니다. 특히 1560년~1660년 사이는 기온이 최저점에 달해 냉해, 홍수, 가축의 병사가 잇따랐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이런 기상 이변을 초자연 적인 힘, 즉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농작물이 냉해로 죽으면 사람들은 분노를 분출할 대상을 찾았고, 사회적 약자인 여인 들을 ‘날씨를 조종해 겨울을 길게 만든 마녀’로 몰아 희생양 삼았습니 다. 특히, 1562년 독일 지역에서 극심한 우박과 한파로 포도 농사를 망치자, 한꺼번에 63명의 여성을 마녀로 몰아 처형한 비젠슈타이그 (Wiesensteig) 사건이 유명합니다. 대중적으로 마녀사냥을 중세의 암흑기의 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큰 오해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