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은 우리가 세계를 체험할 필요 없도록 세계를 정리하는 술책이다.”
막스 프리쉬 저(著) 정미경 역(譯) 《호모 파버》 (을류문화사, 24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현대 기술은 인간이 직접 부딪치고 감각하고 느끼며 사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겪는 체험 대신 ‘기술이 대체한
경험들’ 즉 간접 경험 속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호모 파버》의 주인공 발터 파버는 기술과 이성의 사람입니다. 그는
통계와 논리, 기계적인 질서를 신봉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기술의
합리성이라는 잣대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비극적 우연과 감정, 과거의
인연, 죽음이라는, 인간적인 요소들로 무너지게 됩니다.

“기술은 우리가 세계를 체험할 필요 없도록 세계를 정리하는 술책이다.”
프리쉬는 이 문장을 통해, 기술이 인간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불확실한 세계를 정리합니다. 시행착오와 우연, 감정적 동요와
비효율을 하나씩 없애줍니다. 기술은 이러한 체험들을 ‘불필요한 고생’
으로 간주하고, 대체 가능한 기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혼란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불완전함과
우연성, 시행착오 속에서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법입니다. 길을 잃고 헤
매던 기억,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으로 대화하던 밤, 장마에 발이 젖
으며 뛰었던 여름날 — 그런 순간들이 바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기술이 신앙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구글링으로 성경 구절을 찾을 순
있어도, 그 말씀이 내 눈물과 기도로 체화되기 전엔 그것은 지식일 뿐
복음이 아닙니다. 신앙은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내야 할 체험의 여정입니
다. 예수님은 기술이 아닌 성육신(incarnation)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배고픔과 피곤함, 고통과 눈물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짜 신앙, 진짜 눈물, 진짜 기도를 원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a)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