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시작과 희망의 계절이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듯 4월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뿌린 달이다. 1960년 4월 19일,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공장의 노동자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의한 독재정권에 맞섰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첫 승리이자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온 세상에 알린 역사적 선언이었다.
4·19혁명의 불씨는 1960년 3월 15일 자행된 부정선거로부터 타올랐다. 1948년부터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12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온 이승만 정권은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반공개 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등 노골적인 부정을 저질렀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통령 후보의 득표율이 전체 유권자 수를 넘기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2월 28일 대구 학생 의거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저항에 나섰다.
3월 15일 마산 의거에서 실종되었던 17세 고등학생 김주열 열사가 27일 만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참혹한 장면이 신문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면서 온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4월 18일 서울 고려대 학생 4천여 명이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비호를 받는 폭력배들의 습격을 받았고 이 소식은 항거의 불길을 중·고등학생에서 전국의 대학생과 시민들로 번지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 명의 학생과 시민이 일제히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자 이승만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 진압을 강행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다쳤지만 시위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이어서 4월 25일에는 학생들의 희생을 더는 묵과할 수 없었던 대학교수 300여 명이 시국 선언문을 채택하고 거리로 나섰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하였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위대한 승리였다.
4월이 오면 국립4·19민주묘지에 꽃이 핀다. 그 꽃들 앞에 서서 우리는 다시 다짐해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꾸어 나가겠다고. 4·19혁명의 불꽃은 66년이 지난 지금도 꺼지지 않았다. 그 불꽃은 바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