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는 백일몽을 꾸는 도중에 혹은 한가하게 쉬는 도중에 과학적
돌파구를 만난 일화가 많다. 르네 데카르트는 침대에서 천장에 있는 파
리를 바라보다 좌표 기하학을 생각해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전
차를 타고 가면서 베른 탑을 보다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냈다.
니콜라 테슬라는 숲을 산책하다가 교류 전류를 고안해냈다.”
크리스틴 로젠 저(著) 이영래 역(譯) 《경험의 멸종》
(어크로스, 153-15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한가한 유휴 시간은 창의성이 발현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런 시간들을 못견디게 되었습니다.
소위 멍 때리면서 공상하면서 혹은 백일몽에 빠져 있는 시간 자체를 못
견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줄을 서다가 조금만 지루해도 바로 휴대폰을
꺼내고 뉴스를 검색한다거나 아니면 친구한테 문자를 보내고 카톡을 한
다거나 자료들을 찾아보는 등의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기다려야 할 때 시선을 돌려서 멀리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앞줄에
같이 줄을 서고 있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기다림
혹은 넋 놓고 가만히 있는 순간이 사실은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사
례들이 역사 속에서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딴 생각할 수가 없고 딴
짓을 할 수가 없고 틈새 시간을 오로지 오락과 특히 온라인에서의 소통
으로만 채우게 될 때 우리들은 현저하게 창의성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창1:27)
이 말씀의 의미 중 하나가 하나님처럼 창의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의
미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상상하고, 느끼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
입니다. 그러나 창의성은 쉴 틈 없는 활동 속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쁘고 복잡한 삶의 현장에서 자주 홀로 물러나셨습니다.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더라.” (막1:35)

그 한적함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듣고, 세상과 자신을
새롭게 마주하셨습니다. 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사명과 창
조적 사역을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딴 생각’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멍
때림조차 견디지 못하고, 모든 틈새를 자극적 정보와 오락으로 채워 넣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
지어다”(시46:10)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있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
습니다. 멈춰야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백일몽처럼 떠오르는
생각 속에 하나님의 창조적 영감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