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은 여행과는 다르다. 애머스트대학 교의 문학 교수 일란 스타반
스와〈아비투스Habitus〉의 편집자 조슈아 엘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것,방향 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관광은 안전하고 통제된 것,미리 정해진 것이다.’
현대의 기술은 관광업의 이상적인 시녀다.”
크리스틴 로젠 저(著) 이영래 역(譯) 《경험의 멸종》 (어크로스, 22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오늘날은 ‘직접 경험’이 ‘디지털 경험’으로 대치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경험의 문제는 그것이 거짓이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 매끄럽고 완벽해서 문제입니다. 실제 여행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비, 길을 잃는 당황스러움, 현지인과의 어색한 소통 - 이런 불편
함들이야말로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드는 양념입니다.

디지털 경험은‘불편함 없는 경험’입니다. 화면 속 여행은 결코 길을
잃지 않고, VR 속 도시에서는 냄새도 피곤함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하고, 오류 없이 흘러갑니다. 여행이 아니라 잘 짜여진 관광
같습니다. 우리는 실수에서 배웁니다. 길을 헤매다가 지도를 꺼내보고,
낯선 이에게 길을 물어볼 때 생기는 당황스러움과 웃음, 예기치 않게
만난 현지 시장의 냄새와 소란스러움, 버스를 잘못 타 한참 돌아가야
했던 기억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이야기’를 얻습니다.

디지털은 편리함을 주지만, 불편함이 주는 이 깊은 서사성을 제거합니다.
즉,‘경험의 서사’가 잘려 나갑니다. 우리는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로 기
억합니다. 여행지의 위치는 잊어도, 그날 비를 맞으며 찾았던 작고 따
뜻한 국수집은 기억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분명 귀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도구는 삶을 풍성하게 할
때 의미가 있지, 삶 자체를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 경험은 살아 있는
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얻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완전함을 뒤로하시고, 인간의 불편함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 발이 더러워지는 것을 감수하셨
고, 굶주림과 피곤함, 배신과 눈물의 감정을 온몸으로 끌어 안으셨습니
다. ‘직접 경험’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경험은 삶의
편리함을 주지만, 직접 경험한 삶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