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 뒤덮여 살지만 사회적 기술(예의범절, 인내,눈
맞춤)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중략). 물리적 현실이 가진 한계를 참지
못한다(중략). 대기줄에서의 기다림이든,혹은 지루함이든 말이다.
우리는 실제보다는 가장된 것에 점점 더 끌린다.”
크리스틴 로젠 저(著) 이영래 역(譯) 《경험의 멸종》 (어크로스, 3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다림과 지루함은 낭비가 아니라 여백입니다. 그 여백이 있어야 삶의
문장이 완성됩니다. 크리스틴 로젠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기다리는 시간’과 ‘지루함의 경험’을 잃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연필을 들고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도, 햇살을 바라보며 사색하던 순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루함은 곧잘 ‘시간 낭비’로 취급되고, 기다
림은 ‘무능함’처럼 여겨집니다. 과거에는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바
라보거나, 창밖을 멍하니 보면서 사색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내면이 깊어졌습니다. 기다림과 지루함은 마음이 숨을 고르는
철학자의 방이었습니다.

바람이 멈춰야 연못의 물결이 고요해지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순간에 성찰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
지만 지금 우리는 기다릴 틈을 주지 않는 기술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SNS에서 몇 초마다 새로운 이미지가 쏟아지고,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생각이 뿌리내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도 기도 후에도, 그 말씀과 기도가 성취되기
까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이 기다림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금방 주신 것이 아닙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
았습니다. 사울 왕은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자 기다리거나 회개하지
않고 곧바로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며
멸망을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꽃은 기다림 후에 피어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
라.” (합2:3)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