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생활고 끝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던 30대 남성 A씨가 외국인 동거녀 B씨와 함께 구청 복지상담실을 찾아왔다. 생후 8달의 딸을 안은 B씨곁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두리번거리는 4살짜리 사내아이가 있었다. C군이었다.
은둔형 외톨이인 A씨는 통풍에 우울증을 앓았고 변변한 일을 하지 못해 젖먹이 둘째딸의 아동수당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가스는 끊긴지 오래였고, 체납 건강보험료가 380만원, 수년간 체납한 월세도 500만원이 넘어 퇴거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B씨는 체류허가가 없는 미등록 베트남인이었다. 2017년 한국에 왔다가 A씨를 만나 2018년 남구 한 산부인과에서 C군을 낳았지만 혼인신고는 1년이 지나서야 했다. 2020년에 둘째를 낳아 네 명이 동거 중이지만 C군은 혼인신고 이전 출생자로 국적이 확인되지 않아 출생신고를 못했다. 신고를 하려면 B씨의 신분이 확인돼야 했지만 서울의 베트남 대사관까지 갈 교통비가 없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C군은 보육료와 양육수당 지원 대상이 아니어서 집에서만 키운 탓에 두 살 수준의 언어능력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존재가 없는 아이였다.
남구 희망복지지원단은 이에 따라 A씨를 고난도 사례관리대상자로 선정하고 임시로 주민번호를 대체할 전산시스템 관리번호를 발급받아 C군을 등록했다. 또 A씨가 구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긴급생계비 320만원을 신청해 주고 식료품도 지원했다. 무상으로 1년간 살 긴급주거도 마련해줬고, C군의 어린이집 입소를 주선하고 양육모니터링과 언어치료를 실시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연계해 보육료 240만원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A씨가 새 거처를 마련하면 임대보증금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고 주거비 체납분 250만원과 외국인 배우자 상담·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이후 A씨는 지속적인 상담으로 정서적 안정을 되찾고 취업에도 성공했다. 그는 3개월 수습기간을 마치고 지금은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C군은 베트남에도 출생등록을 하지 않아 국적취득이 복잡했다. 베트남에서 B씨 관련 서류를 발급받아, 대사관에 베트남 국적으로 출생신고를 해서 C군의 베트남여권을 받았고, 이를 외국인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월 결국 한국국적을 취득한 C군의 출생신고가 이뤄졌고, 아동수당과 보육료 혜택이 가능해졌다. 4년 만에 비로소 존재를 찾은 셈이다.
A씨는“우리 아이를 세상에 있게 해주고, 우리 가족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준 남구 공무원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A씨의 사례관리 선정에서부터 C군의 국적취득과 출생신고 등의 과정을 도맡아 처리한 남구 희망복지지원단 고난도사례관리사 갈도원 주무관은 “C군 주민번호를 발급받기까지 유전자검사와 친자확인판결 등에 7개월이나 걸렸지만 미등록 외국인 아동이 존재를 되찾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