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고통은 육체로 직접 느끼면서 타인의 고통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지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영화를 볼 때는 눈
물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살아 있는 옆 사람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
갑니다.”
정여울 저(著) 《공부할 권리》 (민음사, 13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에는 즉각 비명을 지르면서, 타인의 심장을
관통한 대못은 뉴스 속 풍경으로만 소비합니다. 스크린 속 배우의 눈물
에는 손수건을 꺼내면서, 옆자리 동료의 한숨에는 이어폰을 꽂습니다.
멀리 있는 고통일수록 아름답게 편집되고, 가까이 있는 고통일수록 불
편하게 날것으로 남습니다.
예수님은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십자가는 편집되지 않은
고통이었고, 그분은 그 날것의 현장에 살과 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고통을 중계하지 않고 고통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
입니다. 옆 사람의 한숨이 들릴 때 이어폰을 빼는 것, 그것이 오늘의
성육신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면, 결국 자신의 고통에도 혼
자가 되어 갑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12:15)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