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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두이노의 비가’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설혹 한 천사가 있어 나를 가슴에 껴안는다 해도,
그 강한 존재로 말미암아 나는 스러지고 말리라.”

이 세 줄은 릴케의 시 「두이노의 비가」를 끌고 나아가는 기관차 같은
구절입니다. 강한 천사와 연약한 인간. 인간은 짐승은 아니지만, 그렇
다고 천사도 될 수 없다는 것 — 그것이 릴케가 응시한 비애의 핵심입니
다. 영원을 생각하면서도 유한 속에 갇혀 있는 존재, 무한을 그리워하
면서도 필멸을 피할 수 없는 존재. 땅에도, 천사의 하늘에도 온전히 속
하지 못한 채, 그 경계에서 ‘울부짖는 존재’그것이 릴케가 본 인간의
초상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중간한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천사가 우리의 울부짖음을 불쌍히 여겨 품에 안아준다 해도, 문제는 우
리가 그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먹인 보약이 약이 되지 못하고 독이 되듯이, 천사의 사랑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사랑의 종류가 아닙니다. 류(類)가 다른 존재 사
이에서, 이해는 가능할지 몰라도 온전한 공감은 불가능합니다. 천사가
껴안을수록 인간은 으스러질 뿐입니다. 영원을 갈망하면서도 그 영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 여기에 인간 비극의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
습니다. 우리와 함께 우셨고, 함께 웃으셨습니다. 천사는 인간을 껴안아
으스러뜨리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 곁에 앉으셨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동정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나누는 공감 —
그것이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
리라.” (마11:28)

 

 

이토록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우리는 왜 그리 먼 곳에서 찾고 있는 것
일까요. 인간의 비가(悲歌)는 하나님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주
인이 되려는 교만이 그분을 낯선 자리로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교
만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생명의 삶은 시작됩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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