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인 인류학자가 어느 날 밤 칼라하리 사막에서 부시맨들과 이야
기를 나누던 중 자신은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시맨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 했다(중략).
키 작은 부시맨이 그 인류학자를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으로
데려가 밤하늘 아래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런 다음 한 사람이 속삭이며 물었다. 이제는 별들의 노랫소리가 들리
느냐고. 그는(중략)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부시맨들은 그를 마치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모닥불가로 데려간 뒤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참으로 안된 일이라고, 참으로 유감이라고.
인류학자는 오히려 자신이 더 유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듣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시인이며 소설가인 데이비드 웨이고너의 시 「별들의 침묵」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칼라하리의 밤하늘 아래서 별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인류학자의 모습은,
소음과 속도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듣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소리, 곧 자연의 숨결과 이웃의 미
묘한 마음, 그리고 자신의 양심의 속삭임은 점점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귀가 닫혀버린 것입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님은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심심해 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자기에게 말을 걸고,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 먼 나라 이야기를 전해주었기 때문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성령충만한 성
도는 삶의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임재를 바라보는 사람입니
다.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바라보는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사소한
일상 속에서, 심지어는 절망 같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
끼는 삶. 그런 삶이 복되고 행복한 삶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
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3:22,23)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19:2)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