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걸혼 생활은 불행했다. 첫째 아이는 버려졌고, 오늘
날에 비교하면 고아원 같은 곳에서 자랐다. 루소는 《에밀》을 통해 교
육을 이야기했지만 자기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다. 피카소가 수많은 여
인들을 사랑하고 버린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모두 피카소의 창작을 위한 영감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들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결과물’에 대한 칭찬에 비하면 피카소가 떠나버린 여자들,
아인슈타인의 결혼 생활, 루소와 자녀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박웅현 강창래 공저(共著)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알마, 25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공식은 외우면서, 그의 가정은 잊습니다.
장 자크 루소의 교육을 말하면서, 그의 아이들은 말하지 않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앞에서는 감탄하지만, 그가 떠난 사람들의 눈물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세상은 결과를 좋아하고, 하나님은 삶을 보십니
다. 빛나는 업적이 신앙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영웅의 이름보다 중
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한 사람의 진실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는 정치·군사적으로 가장 번영을
이끈 인물이었습니다. 국력을 회복하며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잃
어버렸던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영
토를 확장하여, 북왕국은 다윗·솔로몬 시대 이후 가장 넓은 영토를 확
보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무역과 농업이 활성화되어 국가가
크게 부유해졌습니다. 이렇듯 여로보암2세는 북왕국의 광개토대왕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왕하14:24)
그는 나라를 크게 만들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세우지 않
았습니다. 북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 1세가 세운 금송아지 숭배의 죄
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 선지자들은 도덕적 부패, 심각한
빈부격차, 공의의 상실 등을 지적했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세상이 선망하는 빛나는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한 사람의 진실함에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성결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