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형이상학이 최초로 발생되던 날은 분명히 비가 내리는 날이
었을 것이다(중략). 비가 쏟아지는 날 온종일을 두고 침울한 굴속에
갇혀 있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다른 날과는 달리 수렵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그들은 우울한 빗발 속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
었을 것이다(중략). 비 오는 날의 동굴처럼 작업이 중단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고 삶의 내용을 음미한다.”
이어령 저(著) 《시와 함께 살다》 (문학사상사, 1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고요한 마음으로 인생을 사색합니다. 질척한 회
색의 거리, 그 단조한 빗발 소리는 동굴의 휴일 그것처럼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이어령교수는 인류의 문화가 비 오는 날 즉 여백의 시간에 이
루어졌다고 합니다.
“인류 문화는 일하는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손을 멈추고
잠시 휴식하는 그 여백의 시간에 이루어졌다” (126쪽)

산에 오를 때 사람들은 정상을 봅니다.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다짐이
발걸음을 이끕니다. 드디어 정상에 섰을 때, 환희와 뿌듯함. “해냈다”
는 감격이 온몸을 적십니다. 그런데, 발밑에 피어 있던 들꽃도, 바람
결에 흔들리던 나뭇잎도, 산새의 노래도 놓쳐버렸습니다. 산에서 내려갈
때야 이 아름다운 것들이 보입니다.

철길 가의 코스모스도 기차가 바쁘게 달릴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
차가 멈추어 설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전진에는 분명 기쁨이 있다.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자부심, 성
취의 기대, 살아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멈춤에도 기쁨이 있
습니다. ‘발견의 기쁨’입니다. 멈추었을 때 꽃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전진은 성취를 낳고 멈춤은 깊이를 줍니다.
무엇보다도 멈춤은 ‘가만히 있어’ 주님을 깊이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46:10)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