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에 빗대어 말하면, 소설은 신학자와 철학자와 학자들이 전날
짜놓은 양탄자를 밤새 풀어헤치는 것입니다.”
밀란 쿤데라 저(著) 권오룡 역(譯) 《소설의 기술》 (민음사, 21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트로이 전쟁에 나간 영웅 오디세우스는 전쟁 10년에 귀향길 방랑 10년까
지, 무려 20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많은 구혼자
들이 그의 궁전에 몰려와 “남편은 죽었으니 우리 중 한 사람과 재혼하
라”며 아내 페넬로페를 압박했습니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다 짜면 그때 한 사람을 고르겠다”고 약속하고는,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 되면 몰래 그것을 다시 풀어버렸습니다. 이렇게
3년 동안 시간을 벌며 구혼자들을 따돌렸으니, 끝나지 않는 그 베짜기는
사실 남편을 향한 기다림의 몸짓이었습니다.
그러니 페넬로페가 밤마다 실을 푼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끝내 돌아올 오디세우스를 향한 끈질긴
신실함이었습니다. 그녀가 구혼자들의 성급한 재촉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설은 “이제 결론을 내리라”는 세상의 쉬운 답변들에 쉽게
몸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소설은 인간과 세상을 몇 줄의 이론이나 교리로
단정하려는 확신의 실타래를 밤새 풀어헤치며, “모든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삶의 모호함과 신비 앞에
다시 세웁니다. 그 풀어헤침은, 섣부른 결론 대신 참된 답을 끝까지 기
다리는 겸손이자 페넬로페의 베틀처럼 조용한 신실함입니다.
신앙도 이와 같아서, 하나님을 몇 줄의 교리 안에 가두고 다 안다고 자
신하는 순간,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대신 우리가 짜놓은 양탄자를 섬
기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다 안다고 자신하는 데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알면 알수록 더욱 크고 신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데서 깊어집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