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는 산수화와 기록화, 신선도 등을 많이 그렸지만 정감 어린
풍속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
치로 묘사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은 정조의 국정 자료로 활용되었던
측면이 있었다.”
신병주 저(著) 《왕으로 산다는 것》(매일경제신문사, 274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정조는 국정 개혁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했으며 백성들의 삶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조 시대에는 궁중에서도 백성들의 생활과
풍속을 담은 그림이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며, 당시 궁중 화원이었던 김
홍도는 씨름, 대장간, 서당, 논갈이, 타작 등 평범한 백성들의 일상을
매우 생생하게 화폭에 담았습니다. 정조는 김홍도의 그림 솜씨를 높이
평가하고 여러 중요한 왕실의 그림 작업을 맡겼습니다.
1788년에는 정조의 명을 받은 김홍도가 김응환과 함께 금강산과
영동 지역을 직접 답사한 뒤 그곳의 명승을 그림으로
그려 올렸으며, 1790년에는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의 원찰로 세워진 용주사의 불화 제작에도 김홍도가 관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홍도의 붓은 궁궐의 높은 자리가 아니라 밭고랑과 씨름판과 서당 마
루를 향했고, 정조는 그 그림 앞에서 백성의 굽은 등과 젖은 손등을 읽
었습니다. 다스리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장 낮은 자리의 하루를 들여
다볼 때, 그 눈길은 비로소 정치가 되고 사랑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시33:13)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한 폭의 그림처럼 굽어보고 계
십니다.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