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에 나선 노부부의 모습이었다(중략). 늙은 남편은 아내에게 팔을
빌려주고 천천히 보조를 맞추었다. 남편의 팔과 다리와 눈은 온통 아내
에게로 향했다(중략). 아! 나는 저처럼 타인의 보폭에 내 삶을 맞춘
적이 있던가. 늘 나의 보폭과 나의 생각이 기준이었지(중략). 사랑이란?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나는 오늘 하나의 정의를 발견했다. 나의 보폭이
아니라 상대의 보폭에 내 삶을 맞추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배연국 저(著) 《사랑의 온도》 (글로세움, 195-196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결혼과 가정을 다룬 책들을 펼치면 신앙 서적이든 일반 서적이든 약속
처럼 이 문장이 나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라.” 맞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방향이 같아도 속도가 다르면 그것은 같이 가는 게 아닙니다.
각자 가는 것입니다. 같은 길, 다른 보폭. 그것은 동행이 아니라 추격
입니다. 앞선 사람은 답답해서 뒤를 돌아보고, 뒤에 남은 사람은 서러
워서 앞사람의 등을 노려봅니다.
결혼 생활은 상 들기와도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긴 상입니다.
앞선 사람은 뒷사람의 발을 볼 수 없고, 뒷사람은 앞사람의 등만 봅니
다. 서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는데, 신기하게도 상은 엎어지지 않습니
다. 국물도 넘치지 습니다. 비결은 하나입니다. 같은 보폭입니다. 금
기도 하나입니다. 혼자 먼저 탕, 내려놓지 않기. 한쪽이 먼저 놓는 순간
잡채가 공중제비를 돕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는가”가 첫 번째입니다.
“보폭을 맞추고 있는가.”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동행이란 같이 걸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의 보폭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
까? 맞춰 주신 쪽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사람의 걸음까지 입고
오셔서, 한 발 한 발, 우리 다리 길이로 걸어 주셨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아래로 줄여 주는 걸음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2:3,4)
<강남 비전교회 / 한재욱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