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 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중략).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 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 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 저(著) 조현욱 역(譯) 《사피엔스》 (김영사, 56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기술 발전’의 개념이 아 니라 인간의 행복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현대는 분명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 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보다는 노는 데 보냈던 아주 옛날 인류보다 행복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질적 부와 정신적 행복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환경을 이해 하고 지배하는 지식은 늘어나 큰 진보를 이루었지만, 지혜의 측면에서 보면 현대인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옛 인류보다 더 우월하거나 더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편안함’의 측면에서 보면 분명 역사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측면에서 보면 더 행복해졌고, 더 행복해 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 아가는 인류는 심판의 날을 맞이해야 하는 죄악의 역사가 깊어질 뿐입니 다. 인류의 역사는 분명 종말, 즉 하나님의 심판과 결산의 날로 다가 가고 있는 중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마다 이런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마라나타”(Maranata, “주님이 곧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교회, 이상적인 성도를 말할 때마다 초대 교회를 말 합니다. 이 일세기 초대 교회의 생명력,성도들의 활기는 주님의 재림의 날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그 어느 역사의 현장에서도 거룩과 행복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 으리라.” (살전4:17) <경건 메일> 아시아통신 김광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