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통신] "사람들은 아버지를 '사라진 사람', '위험한 사람'이라 불렀고, 우리는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제는 독립운동가 구여순 이름을 당당히 부를 수 있기에 오늘 아버지의 훈장을 가슴에 품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독립운동가 구여순의 장녀 구철희 씨가 의령 군민께 보내는 ''나는 독립군의 딸입니다" 편지 내용이다.
의령군에 지난 18일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일정(一丁) 구여순(1896~1946·존칭 생략)의 맏딸을 포함한 14명의 후손이 의병박물관을 방문했다.
구여순의 장녀 구철희(93) 씨가 생전에 고향 의령에서 군수로부터 아버지 건국훈장을 받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특별한 나들이가 성사됐다.
이날 오태완 군수는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에서 독립운동가 고(故) 구여순 지사의 유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했다.
정부가 1990년 구여순에 추서한 건국훈장 애국장이 분실된 이후 재신청을 통해 올해 교부됐고 유족들은 훈장을 고향에 기부하기로 했다.
구철희 씨는 "아버지는 대구형무소에 갇혀 있을 때 의령 군민들이 동정금을 모아 모친에게 전달한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셨다"며 "서울과 중국에서 독립운동할 때도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의령 군민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A4용지 두 장 분량의 ‘나는 독립군의 딸입니다’ 편지글을 직접 써왔고 이날 막내딸 류인정 씨가 대독하는 걸 들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구철희 씨가 노구를 이끌고 의령을 방문한 데는 오태완 군수의 영향이 컸다. 한사코 의령군수에게 건국훈장을 받겠다는 유족들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구 씨의 둘째 사위 황현태 씨는 "오태완 군수의 2024년 신년사 기사를 온 가족이 봤다. 100년 전 구여순 선생을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군수는 2024년 신년사에서 "100년 전 1924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받은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구여순 선생은 ‘독립사상을 지금도 품고 있느냐'는 일제 검사의 신문에 '지금이라도 조선 독립이 된다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바칠 용의가 있다'라는 발언을 언급하며 "의령군민에게는 100년 전부터 ‘용기’가 자라나 있었다. 용기와 헌신으로 더 살기 좋은 의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24년 11월 문을 연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에 설치된 '구여순 주제관'도 유족들을 설레게 했다.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은 오태완 군수 공약사업으로 만들어졌고 항일 의병과 독립운동 인물까지 집중 조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구여순의 증손녀 류인영(16) 양은 "할아버지가 애써주신 덕분에 지금 우리가 편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주제관에서 역사를 훑어보니 업적이 놀랍고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오태완 군수 "인물의 고장 의령에 구여순 선생은 또 하나의 역사이자 의령 사람의 긍지"라며 "경남에서 항일 의지를 이야기할 때 의령을 빼놓으면 안 된다. 의령군청에서 의병탑 방향으로 뻗은 '충익로'에 군민 30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그 중심에 구여순 애국지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오 군수는 "의령 곳곳에 선열들의 독립 만세의 의지가 서려 있다. 항일의병의 독립 만세 운동 활약을 기억할 만한 공간과 장치를 마련하는 고민을 하겠다"고 밝혔다.
구여순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의령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 무장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이후 고려구국동지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이어갔고 광복을 맞아 김구 선생과 더불어 신탁통치 반대와 친일파 청산을 위해 애쓰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