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거문도. 백도,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백도"> 김광부 기자
“글쓰기는 내가 쓰는 것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쓰는 것’은 사용
하는 물건과 글을 쓰는 행위를 의미한다. 내가 평소에 무엇을 사용하는
지가 나의 삶을 결정하고 그것이 내가 쓰는 글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한
다. (중략) ‘내가 쓰는 것이 곧 내 자신이다.’ 미셸 드 몽테뉴의 명
언이다(중략). 글을 쓴다는 건 사는 문제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유영만 저(著) 《책 쓰기는 애쓰기다》 (나무생각, 152-153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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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지금 내가 딛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느끼며 생각한
점을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로 옮기는 과정입니다. 삶과 연관이 없는
글쓰기를 한다면 허위(虛僞)로 가득 찰 가능성이 많습니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 백도,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백도"> 김광부 기자
“처절한 삶이 없는 건조한 글은 지루하다. 치열한 고민 끝에 몸으로
뽑아낸 문장에는 관념의 거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삶의 엑기스가 농
축되어 탄생한 문장이기에 함부로 읽기도 겁난다. 진정성으로 무장한
문장에는 꾸임으로 포장하거나 거짓으로 위장할 여력이 없다.”(153쪽)
<전남 여수시 거문도. 백도,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백도"> 김광부 기자
신앙도 그러합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삶’입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톤은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이자 개척자, 탐험가,
의사입니다. 그가 16년간 아프리카 선교 사역을 하다가 조국인 영국으로
일시 귀국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 백도,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백도"> 김광부 기자
글라스고 대학은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그의 수고와
헌신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경우가 있지만 당시 대학
생들도 명예 학위를 받는 인사들에게 때로는 야유를 보내곤 했습니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 백도,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백도"> 김광부 기자
그러나 리빙스톤이 교단에 서는 순간 장내는 깊은 침묵에 빠져 들었습니
다. 리빙스턴의 병약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심한 노고와 열병,
풍토병으로 육체가 망가져 있었고, 팔은 밀림에서 사자의 습격을 받아
생긴 상처로 간신히 어깨에 매달린 모습이었습니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 백도,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백도"> 김광부 기자
리빙스톤이 입을 열어 연설하기 전에
이미 장내의 학생들은 그의 장엄한 모습에 감동되어
있었습니다. 무려 30여회에 걸쳐 죽음을 모면하는 순간들을 겪은 리빙
스턴은 입술이 아닌 빛나는 얼굴과 온 몸과 삶으로 연설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설교일 것입니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약2:18b)
<경건 메일 / 한재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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