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건 동서고금의 보편 명제지만 특히 페
스트가 막 휩쓸고 지나간 중세 말기 유럽에서는 강박관념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 때 〈죽음의 춤〉이라는 연극이 상연되기 시작했다. 그 내
용은 해골 모습을 한 죽음이 다양한 신분과 직업의 사람들― 왕과 왕비,
성직자, 기사, 귀부인, 상인,농노 등―을 하나씩 불러내 춤을 추고 그
들이 갖은 이유를 대며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무덤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곧 〈죽음의 춤〉은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지게
되었다.”
문소영 저(著) 《명화독서》 (은행나무, 23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14세기 유럽은 페스트의 영향으로 ‘죽음의 무도(La Danse Macabre)’
라는 죽음을 주제로 한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죽음의 무도를 주제로 한
벽화와 판화에는 해골이 등장하고, 교황과 황제, 추기경, 대주교, 시민,
상인들의 등 뒤로 해골들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춤을
추며 그들을 무덤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어느 계층이건, 성공한 자와실패한 자 상관 없습니다.
모두들 죽음 속으로 갑니다. 페스트가 창궐 하자
유럽인들은 삶의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온 죽음을 자각하였습니다.
<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그리고 인간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그들의 깨달음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담임목회를 하면서 임종의 순간을 많이 봅니다. 이 가운데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 하늘 소망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사람들,그 강을 건
너가는 사람들,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확신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우리 성도들은 이 죽음의 강을 건너가면서
이렇게 소리쳐 노래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
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55-57)
<경건 메일 / 한재욱 목사>
<전북 무주, "덕유산 겨울"> 김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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