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최근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뇌신경생리학자들은 사람의 뇌에 공감적
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신경세포와 신경체제가 들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소위 거울뉴런과 거울뉴런체계입니다. 이 신경세포는 자신의 몸에서 일
어나는 반응을 관찰하고 느낄 뿐 아니라,마치 거울처럼 다른 사람에
게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도 재빨리 알아채고 반응하는 능력을 가졌
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느낌,같은 생각,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감의 생리적 근거인 셈이지요.”
박성희 저(著) 《공감》 (이너북스, 1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마련된 공감을 위한 신경생리세포는 쓰면 쓸수록 더 촘촘
하고 정교해집니다. 따라서 공감 능력은 인생 경험이 늘어날수록 풍부
해져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공감하는 능
력이 생각보다 시원치 않다고 여겨질까요?”(11-12쪽)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이기적인 죄성 때문입니다. 공감하는 마음을
열어 놓으면 이웃에게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서 올라오는 공감을 애써 외면합니다.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그러나 하나님은 공감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살립니다.
사랑은 공감이고 동행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싸이코패스였습니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면 그 병자에 대한 축하보다는 왜 안식
일에 고쳤냐고 합니다. 잔치집에 가서는 왜 금식하지 않냐고 합니다.
공감하지 못하면 마네킹입니다. 사람을 살려내지를 못합니다.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
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
니라.” (히4:15) <경건 메일 / 한재욱 목사>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병풍 폭포)"> 김광부 기자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병풍 폭포)"> 김광부 기자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전북 순창 "강천산 가을"> 김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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