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지석영은 1894년 7월 5일 그 당시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 글은 《고종실록》에 실려 있다.
‘...난이 일어나자 먼저 도망친 간신 민영준과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
신병주 저(著) 《우리 역사 속 전염병》 (매일경제신문사, 201-20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임오군란’으로 피신했던 명성황후는 충주에 이르러 『삼국지』에 나
오는 관우 장군의 딸이며 관우 장군을 모신다는 무당 박창렬을 만납니다.
무당 박 씨는 명성황후가 곧 복귀한다는 점을 치고, 그 점대로 명성황
후는 궁으로 돌아옵니다. 명성황후는 무당 박 씨에게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내리고, 그의 요청대로 북묘(北廟)라는 관우 사당을 지어줍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고종도 진령군에게 미혹되어 관우 사당의 비문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세간에는 “밤에 무당이 한 말이 아침에 어명으로 내려온다”는 말이
퍼졌고, 북묘에는 뇌물로 관직을 청탁하는 무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진령군은 부정부패를 일삼았습니다. 백성은 굶주리는데 허약한 세자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의 병을 고친다고 굿판을 벌이고 금강산 1만 2천
봉마다 쌀 한 섬과 돈 천 량과 무명 한 필을 올려 국고를 탕진했습니다.
소수의 충신들이 진령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쏟아냈으나,고종은 오히려
이들을 유배 보내 버립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최악의 책사, 최악의 상담가를 만나면 이 꼴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 중에 최상의 상담가를 만나게 해주
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과 자녀들이 하나님의 가치관과
마음을 품고 있는 최상의 상담가를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신약의 바나바가 그러하였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
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행4:36)
‘위로의 아들’이라는 칭호답게 바나바는 최고의 상담가가 되어 바울
사도와 마가 등 많은 사람들을 주의 마음을 권면하고 위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갔습니다. <경건 메일 / 한재욱 목사>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 가는길> 김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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