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서
대원들은 과연 ‘라이언 일병 한 명의 생명이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최성수 저(著) 《영화관에서 만나는 하나님》 (이화, 131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라이언 가문은, 네 형제가 모두 전쟁에 참전했는데,
막내만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습니다. 미행정부는 제임스 라이언만이라도
살려 보내는 것이, 그 어머니를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공수부대
밀러 대위에게, 적진 한가운데 있는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명령을 하
달합니다. 밀러 대위는 대원 7명을 데리고 떠납니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목숨을 걸어야 합니까?”
대원들은 작전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의
문점이 있습니다. 첫째, 맹수와 도적의 위협이 있는데, 아흔아홉 마리를
방치한 채,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일이 합당한 일인가? 둘째는,
잃은 양을 찾은 후, 그 양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 잔치를 벌인 점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도 공리주의(功
利主義) 입장에서 비추어 보면,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 ‘한 사람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충성을 다한 한 사람을,
국가는 최선을 다하여 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이언 일병과 그 형
제들은 충성스러운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잃은 양 한 마리 같은 우리는
아무런 공로도 없는 ‘찌질한 일병’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우
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마치 이 우주에 나 한 사람만 있는 양, 우리를
찾아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경건 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