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인들은 눈에 관한 어휘를 많이 갖고 있고,
과테말라 인디언들은 섬유 직물에 관한 어휘를 많이 갖고 있다.
아시아 문화에서는 가족관계의 혈연관계를 정의하는 어휘가 많다.”
김용규 저(著) 《생각의 시대》 (살림, 82-83쪽)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인 브라우닝은 “행복한 가정은미리 누리는 천국이다’라고 했고,
작가 펄 벅은 “가정은 나의 대지이다. 나는 거기서 나의 정신적인 영
양을 섭취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전 별세하신 이어령교수의
‘세계 지성과의 대화’(문학과 사상사, 471쪽)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서양에서는 가족보다는 인류와 개인이 중요시 됩니다. 때문에 대체로
서양의 철학자는 독신입니다(중략). 서양의 철학자들은 가족이란 것이
없고 그것이 순수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중략).
동양인은 대체로 가족을 구성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에 근본적인 시작이 있고 그 가족애가 애사심이 되고 결국은
애국심이 됩니다. 가족애가 출발입니다.”
수 없이 헛되다는 말의 반복이 나오는 전도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9:9)
참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내 몫이
바로 아내라고 합니다. 아내의 가치가 평생 모은 월급 정도가 아니라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몫이라고 합니다.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 또한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전도서에서도 가정의 소중함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경건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