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말 그대로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 머릿속에는 존재한다. 여기는 오직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서만 닿을 수 있다. 비록 상상 속에서만 닿을 수 있는 곳이기는 해도,
상상하는 사람에게 그곳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닿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갈 방향을 인도해주기도 하니 말이다.”
김종성 저(著) 《쓰다보니》 (바른북스, 2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간이 사모하는 아무 문제와 고난이 없는 낙원인 유토피아는, 그리스
어인 ‘Ou(없음)’ + ‘Topos(장소)’의 합성어로, 말 뜻 그대로 ‘아무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낙원은 없습니다. 그런
데도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끝없이 사모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며 살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은 최고의 낙원이었습니다. 낙원에서
살아가던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원하면서 낙
원을 잃어버리고 ‘실낙원’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인
간은 완벽한 낙원을 늘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 낙원의 삶을 다시 살기 위한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 다시 동행하면서부터 낙원이 회복되기 시작합니
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며 찬송하며 기도하며 전도하는 삶이 낙
원의 삶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9) <경건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