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것을 결의했다(중략). 광복군이 꿈꾸던 최후의 전장은 바로 조선이었다. 특수군을 편성해 국내로 잠입한 뒤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한다는 것이 광복군의 구상이었다. 이것은 일본군에 대한 실제적 타격보다는 전승국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상징적인 투쟁의 성격을 지 니고 있었다.” 최용범 이우형 공저(共著) 《하룻밤에 읽는 한국근현대사》 (페이퍼로드, 27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임시정부가 조직한 광복군은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급습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그래야 태평양전쟁 종전과 함께 ‘승전국’ 지위를 얻어내 종전 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한국의 독립을 이해 최선을 다했으나 여러 이유로 정식으로 연합군의 일원으로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광복군은 미국전략정보국(OSS)과의 협력 아래 국내 진공을 위한 준비를 진행시켰습니다. D-day는 1985년 8월 29일, 바로 국치일이었습니 다. 그러나 아쉽게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국내 진공을 하지 못했습니 다. 임시정부는 땅을 치며 아쉬워했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 하늘에 갔을 때도 그럴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결정적인 헌신의 기회들을 놓치고, 하늘 나라에서 개털 면류관 하나 쓰고 앉아 있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전도할 때요 지금이 헌신할 때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5:16) <경건 메일> 아시아통신 김광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