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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만평

길모퉁이에서

종교의 방향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릴 때 저들 나름대로 전형적인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하는 데 현저한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은 유대 민족의 영웅 마카베우스의 유다(Judas Maccabeus)이고 한 사람은 침례 요한이다. 그리스 제국이 세력을 넓히면서 이질적인 여러 문화를 흡수하는 과정을 헬레니즘화(hellenis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속국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정체성을 빼앗아 그리스 문화에 젖어 들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스라엘에서의 헬레니즘화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히브리인들은 더 세련되어 보이는 그리스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히브리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요소를 포기했고, 급기야 헬레니즘화는 유대교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인들은 이전의 침략자들처럼 유대교를 탄압하거나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유대교는 구식이고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했고 신앙을 지킨 열심 있는 소수에 대해서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세대 인물들이라고 여기고 방관했다. 그렇게 하여 유대교가 쇠퇴하면서 거의 소멸하여 가던 중에 알렉산더의 후계자 중 한 사람 셀루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가 등장했다. BC 167년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에게 우상의 제단에 부정한 희생물을 바치고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했고 예루살렘 성전은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쳐 숭배해야 하는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를 예배하는 장소가 되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마을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예루살렘에서 25km 정도 떨어진 ‘모디안’이라는 작은 마을에서도 안티오쿠스의 명령을 집행하는 정부 관리가 그곳 늙은 제사장 맛디아에게 부정한 희생 의식을 수행하도록 요구했다. 그때 맛디아는 그 요구를 거절했고 다른 유대인 제사장이 정부 관리의 명령을 따르려고 앞으로 나섰을 때, 맛디아는 그 제사장과 정부 관리를 죽이고 제단을 부수었다. 그 후 노 제사장 맛디아는 셋째 아들 유다에게 지도력을 전수한 후 BC 166년에 죽는다. 그때부터 유다는 죽기 전까지 6년 동안 압제자에게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처음으로 유대인들에게 종교 자유를 되찾아 주었으며 완전한 독립을 위해 계속 전진했다. BC 160년 유다가 살해당하자 그의 형제 요나단과 시몬이 투쟁을 계속했고 BC 143년 마침내 이스라엘은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되찾았다. 그 후 이스라엘은 BC 63년에 로마 제국의 침입으로 또다시 자유를 잃고 만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즈음에 유대인들은 마카베우스 가처럼 압제자들을 물리칠 또 다른 해방자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런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다. 유다가 유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전례를 남겼다면 침례 요한은 모든 옛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전형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무엇보다 금욕적이고 엄숙한 근본주의자였다. 자신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고 그의 제자들은 오랫동안 금식하고 기도했다. 요한은 관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위를 맹렬히 비난하며 분노하는 엄격한 설교자였다. 회개를 촉구하고 의롭고 거룩한 생활을 요구한 요한의 모습은 전형적인 이스라엘 선지자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선지자라면 으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두루 갖추었다.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가 선지자임을 즉각 분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요한에게 당신이 바로 그 메시아냐고 물었고, 요한이 부인했을 때 그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라고 했을 때 예수님을 마치 마카베우스의 유다와 그 형제들 같은 인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카베우스 가의 영웅들과 같지 않았고 침례 요한과도 달랐다. 예수님은 폭력을 사용하거나 정치적 독립을 시도하지 않았고 침례 요한과 같은 금욕주의자도 아니셨다. 예수님은 명랑하고 즐겁게 사는 것을 긍정하셨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시고 그들의 흥을 위해 기적 베푸심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예수님은 인생을 너무 즐기고 요한만큼 금식하지 않는다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셨다(눅 7:33-34) 이런 예수님을 당시 유대인들은 저들이 기대한 선지자가 아니라고, 저들이 가진 기존 개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쇠퇴의 길을 걸었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전형적인 선지자의 모습과는 달랐던 예수님은 오늘까지도 시들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최근의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85년 6백48만 명에서 1995년 8백76만 명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던 개신교 인구는 2005년 8백61만6천 명이 되어 10년 동안 14만4천 명이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5년 42.6%에 그쳤던 종교 인구는 2005년 53.1%를 기록해서 10.5%가 늘었다는 것이다. 종교인은 늘어 가는데 개신교인들은 줄어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기사를 쓴 한 주간지 기자는 이러한 개신교의 쇠퇴는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종교 변화를 상징하는 최대의 사건이라고 했다. 일반 개신교회에서는 최근에 나타난 이런 교회 성장의 쇠퇴 원인을 무엇보다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에 찾고 있다. 이것은 2004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물음에 개신교 신자들이 “교회가 양적 팽창, 외형에 너무 치우친다.”라고 응답한 것에 대한 결론이다. 한국의 개신교회가 추구한 것들이 진리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는 무의미한 것들이었고, 복음의 진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면 개신교라는 큰 틀 안에 들어있는 재림교회는 어떤가? 한국 연합회 총무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재림교인의 수는 20년 전 1985년도에는 7만7백18명, 10년 전 1995년도에는 13만28명, 그리고 2006년 1월 현재 18만8천8백7명이라고 한다. 외견상 한국의 일반 개신교의 모습과는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양적 성장만큼이나 질적인 성장을 가져왔을까? 이 문제는 주관적이어서 판단을 내리기가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재림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가 침례를 받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 못지않게 여러 가지 이유로 뒷문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 재림교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는 무엇이며 정확히 조사해 본 일이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대개 음식물을 통한 건강생활과 예배일로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이미지 속에서 재림교회 또한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을까? 건강을 위해 음식물을 가리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재림교회가 또한 이런 일을 추구하면서 진리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생수를 건네주었는지, 복음을 잘 드러내었는지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재림교회의 모습은 국경선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지방 경계선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황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재림교회의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드러난 숫자상의 성장이나 쇠퇴가 아니다. 교회의 전반적인 모습이 현대성의 홍수에 침식당하고 있고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삶의 경건성은 사라져 가고 거룩한 기쁨도 찾기 힘들다. 신앙의 연륜이 깊을수록 더욱 편협한 사고를 하고, 진리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더 고집 한다.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와 문화에 둔감하며 역사의 흐름을 보는 눈이 특정한 종말의 한두 사건에만 치중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이해가 편협하고 지엽적이며 닫힌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진리는 변할 수 없지만 그 진리에 대한 이해는 인간 이성의 발달과 경험의 증가로 변할 수 있음을 간과하는 교인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함께 나누려고 하면 그것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이해와 다름으로 해서 거부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그 결과로 발전적인 변화가 없게 된다. 존 맥머래이(John MacMurray)는 “종교의 쇠퇴는 종교의 변화에서 최초의 단계다.”라고 말하고 “전통 종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종교 형태의 변화에 필요한 예비적 단계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찰에 의하면 한국 재림교회도 변화의 전주곡이 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재림교회는 변화의 모퉁이에서 새로운 길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의심해 보고 철저하게 비판하여 진부한 것, 잘못 알려졌던 것, 그 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새로이 찾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는 비판될 수 없는 것이 없다. 오직 성경만이 비판될 수 없는 절대적 표준이다. 우리는 인간 사상과 인간 사상 체계의 영향을 받은 문화와 일상생활 속에서 산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의식과 행동 방식에 하나님을 하나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리는 일들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생활 속에 하나님이 부재할 때도 많다. 신자의 무신론, 신의 긍정의 소리 없는 타락은 공공연한 무신론보다 나을 그것이 없다. 그리고 실천적으로는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뼈를 깎는 반성을 하고 새롭게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형성되어 온 전형적인 목회자의 모습과 교회 지도자의 모습에서 구태의연한 것들은 철저히 버리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갖가지 회의 참석과 침례자 숫자를 파악하는 일이 교회 지도자 본연의 모습이 아닐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음식물과 안식일, 대내적으로는 십일금과 침례자를 강조하는 것이 복음의 진수일 수는 없다. 특히 지나친 침례자 숫자 위주의 성장 평가 기준은, 요즈음 재림교회 일각에서 행해지는 침례의 모습에서 최소한의 원칙이나 통일된 기준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선(先) 침례 후(後) 교육이란 이름으로 십자가 속죄의 은혜로 구속의 기쁨도 경험하지 못한 거듭나지 못한 신자를 양성하게 되면 교회 전체의 체질이 약화하여 쇠퇴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마카베우스의 유다를 기다리며 침례 요한에게 가서 그들이 기대했던 선지자의 여부를 묻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다른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길모퉁이에 선 재림교회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말씀으로 계시된 하나님을 지성(至誠)으로 추구하고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인식된 하나님과 그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나누어 주는 일이 재림교회의 처음과 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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